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1부 - 2

2025. 4. 16. 14:33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저자 - 안광복

 

챕터별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 정리 

 


[에피쿠로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쾌락을 좇고 고통은 멀리한다. 따지고 보면, 선은 쾌락을 많이 주는 것에 지나지 않고 악은 고통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통을 줄이고 가능한 한 쾌락을 많이 얻는 것이 선하고 좋은 삶이다. 이 점에서 그는 '쾌락주의자'로 불린다.

우리가 가장 큰 즐거움을 얻으려면 고통이 없는 쾌락만 추구해야 한다.

철학을 함으로써 불필요한 욕망을 없애고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소박하게 산다면,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고통도 없는 상태인 아타락시아에 이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쾌락주의라 부른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철학은 가늘고 모질게 살라고 강요하는 금욕주의에 더 가깝다.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뜻대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부터 가려내야 한다. 나의 의지, 나와 관련된 일들에 대한 나의 판단,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나의 행동, 이 세 가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면,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고통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을 바꾸려 할 때 생긴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대방에게 달려 있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는 "(마음의) 평온함은 더 높은 삶을 살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세상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기를 바라지 말고,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휘둘리지 않을 때 삶의 고통도 어느덧 스러지는 까닭이다.

남들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대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기억하라. 그 느낌을 지금 당신에게 일어난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라. 모든 일들, 심지어 죽음까지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라."

삶이 주는 고통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말고 시성적으로 생각하며 차분히 대응할 때, 모든 고통은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된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상담 심리학에서 말하는 '평안의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안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또한 그 두 가지를 구분할 지혜를 내게 허락하시옵소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세상일은 모두 우주적 이성, 로고스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을 발휘하여 우주적 이성의 깊은 뜻을 깨달아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의 평화, 즉 부동심을 찾아야 한다.

내가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면, 이성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이 존엄하다는 사실도 당연하다.

로마가 내세웠던 세계 시민주의는 바로 이 같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이성이 모두 우주적 이성에 따른다면, 다른 민족이 만든 법도 로마법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본래 있는 법칙이 민족과 문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자연법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다른 민족의 문화나 풍습도 우주적 이성에 따르는 것인 만큼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정복이 곧 약탈과 파괴로 이어졌던 고대 문화 속에서도, 로마만큼은 오히려 정복당한 민족을 나와 같은 이성을 가진 동포로 보고 보호하고 존중하려 했다. 로마의 대제국은 이러한 스토아 철학의 포용과 관용 위에서 가능했다.

 

** 로고스: 사물의 존재를 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 그리고 행위가 따라야 할 준칙을 인식하고 따르는 분별과 이성을 뜻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악은 아우구스티누스뿐 아니라 기독교 교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던 어려운 문제였다.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은 선하고 전능한 분이다. 이런 신이 만든 세상은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세상은 왜 고통과 절망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이것은 교리 연구자들이 해결할 수 없었던 커다란 문제였으며 이교도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는 중요 포인트기도 했다.
이 문제를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란 없으며 선의 결핍일 뿐'이라는 한 마디로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작은 선을 택하지 않고 더 큰 선으로 향할 수 있을까? 이는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작은 선에 대한 집착, 곧 악행에서 벗어나 큰 선을 택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그는 이성과 신앙은 '신에게 가는 서로 다른 길' 임을 깨닫고 논리적인 작업을 통해 신에게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신학자들이 세속적이라고 보는 논리와 이성적 설득으로도, 신이 있음을 증명하고 신의 능력과 권위를 찬양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얻기 위한 기준을 마련해 준다. 그런데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이란 신을 직관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신이 세상에 심어 놓은 자연법을 깨닫고, 이에 따라 선을 좇고 악을 피하는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자연법에 따라 사람들을 다스리고 행복으로 이끌 때 사회의 공동 선을 이룰 수 있다.
반면, 교회는 국가가 이루려는 공동선보다 더 소중한, 신에게로 나아가는 초자연적 목적을 추구한다. 따라서 종교적 구원이나 신에 관한 문제에서는 국가는 교회에 복종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교회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는 자연법에 따라 사회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요컨대, 국가와 교회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향해 가는 서로 다른 두 길일 뿐이다.
토마스의 가장 큰 기적은 맹목으로 흐르기 쉬운 신앙에 대해 이성적 사유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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